앞서 이야기에서, 나는 중립과 중도가 다르다고 썼다. 그런데 이 둘이 일상에서 같은 말로 취급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보니,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중립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으레 "그래서 어느 편도 아니라는 거지?"라고 생각하고, "중간쯤 어딘가에 있다는 거구나"라고 넘겨짚는다. 이 글에서는 그 넘겨짚음이 왜 틀렸는지를 짚어보려 한다.
더 들어가기 전에, '드래곤 랜스'라는 판타지 소설을 잠깐 소개할까 한다. 교과서적인 판타지 TRPG인 <던전 앤 드래곤즈(D&D)>를 기반으로 한 대하 시리즈물인데, 여기서 마법사는 (그야말로 게임스럽게도) 자신의 성향, 즉 가치관에 따라 옷을 다르게 입는다. 선한 마법사는 하얀 로브를, 악한 마법사는 검은 로브를, 그리고 중립 마법사는 붉은 로브를 입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중립이 회색이 아니라 붉은 로브라는 점이다.
이 소설에서, 하얀 마법사들은 검정과 빨강이나 거의 비슷하게 더러운 색이라고 본다. 반면 검은 마법사들은 빨강이나 하양이나 어차피 '순수'하지 못한 색으로 보고, 붉은 마법사들은 하양이나 검정이나 무채색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다시 말해 흰색과 검정 사이에 회색이 놓인 것이 아니라 흰색, 검정, 붉은색이 삼각형의 세 꼭지점을 이루는 세계관이다.
이 구도를 받아들이면 중도와 중립의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중도를 먼저 생각해보자. 중도는 보통 하나의 직선 위에서 정의된다. 한쪽 끝에는 진영1이 있고, 다른 쪽 끝에는 진영2가 있다. 중도는 그 직선 위 어딘가, 양 끝보다는 가운데에 가까운 지점에 자신을 놓는 태도다. 어떤 정책에 대해 진영1은 전면 시행을 주장하고 진영2는 전면 폐지를 주장한다면, 중도는 "절반만 시행하자" 혹은 "단계적으로 시행하자"는 식의 절충안을 낸다. 이때 중도가 하는 일은 두 입장의 가중평균을 구하는 것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건, 중도가 절충안을 내놓는 그 순간조차도 여전히 그 직선, 즉 진영1과 진영2라는 두 개의 축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도는 두 진영이 만들어놓은 일차원 좌표계 안에서 자신의 좌표를 좌우로 옮길 뿐, 그 좌표계 자체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중도는 진영 구도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구도가 유효하다는 전제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두 진영의 입장이 다 일정 부분 타당하니 그 중간을 택한다"는 논리는, 애초에 그 두 입장, 즉 진영만이 고려할 가치가 있는 선택지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제 중립을 생각해보자. 중립은 직선 위의 한 점이 아니다. 중립은 그 직선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중립적인 사람은 정책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내, "이 정책이 실제로 타당한가"라는 질문만 던진다. 그 답이 우연히 진영1의 입장과 일치하면 그렇게 말하고, 다음 정책에서 그 답이 진영2의 입장과 일치하면 또 그렇게 말한다. 이건 절충이 아니라 매번 다시 처음부터 판단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립인 사람의 입장들을 모두 모아놓으면, 하나의 깔끔한 점이나 직선 아니라 여기저기 사방으로 흩어진 별자리처럼 보인다. 어떤 사안에서는 진영1과 완전히 같은 자리에, 어떤 사안에서는 진영2와 완전히 같은 자리에, 어떤 사안에서는 둘 다와 다른 자리에 있게 된다. 당연히 어느 진영과도 떨어진 자신만의 자리에 있을 때도 있다. 중립은 서로에 대해서도 '같은 편'이 아니라 중립이다.
이 차이는 단순히 말로만 떠드는 정의가 아니다.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 다르다. 중도는 어느 사안에서든 비슷한 모양의 결과를 낸다. 언제나 "조금씩 다 맞다"는 식의 절충적 답을 내놓는 것이다. 그래서 중도는 대체로 우유부단하고, 이도 저도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절충이라는 방법론 자체가 늘 비슷한 모양의 답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반면 중립은 사안마다 전혀 다른 강도와 방향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어떤 사안에는 한쪽 진영보다 더 극단적으로 동의하고, 다른 사안에는 양쪽 모두를 강하게 반대한다. 중립은 결코 흐릿한 입장이 아니다. 오히려 사안별로는 누구보다 또렷한 입장을 가질 수 있다. 다만 그 또렷한 입장들이 하나의 진영으로 정렬되지 않을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날 밤 채팅방의 일이 다시 설명된다. B가 "누구 편이냐"고 물었을 때, 그가 기대한 답은 내가 그 직선 위 어디에 있느냐는 확인이었다. 만약 내가 "저는 A의 편이에요", 또는 "B의 편이에요"라고 답했다면, 그는 아마 쉽게 납득했을 것이다. "A와 B 사이의 절충을 제안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해도, 껄끄럽지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 답은 여전히 그가 알던 좌표계 안에 있으니까. 하지만 내 진짜 입장, 즉 '가'에서는 A가 맞고 '나'에서는 B가 전적으로 맞다는 것은 그 좌표계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 답이었다. B에게는 이게 답이 아닌 것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가 가진 측정 도구는 진영이라는 자였기 때문에, 그 자로 잴 수 없는 입장은 마치 입장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즉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로 보였을 거다.
그래서 나는 중립을 중도나 중간이 아니라 '반진영주의'라고 부르는 쪽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중도는 진영주의를 현실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버전이다. 진영의 존재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서 '진짜로 적용할' 타협점을 찾는다는 점에서, 중도는 진영주의라는 게임의 규칙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실현하려는 '진영주의의 첨병'이다. 반면 중립은 그 게임 자체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아웃사이더에 가깝다.
다음 글에서는 진영주의라는 게임이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게임의 규칙이 왜 우리의 정책 판단을 왜곡하는지를 들여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