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PC 채팅으로 밤을 지새우던 시절의 일이다.
화면 가득 흘러가는 텍스트를 지켜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던 그 공간에서, 어느 날 A와 B 두 사람이 정치적인 주제 '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지금도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정치적인 주제였으므로, 여기서는 ‘가’라는 이름으로 추상화하기로 한다. 사실은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아서지만).
그날 나는 한동안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다가, A의 주장에 더 공감이 가서 동조하며 끼어들었다. 그렇게 그날 밤 대화는 뜨겁게 흘러갔다.
얼마 뒤, 이번에는 '나'라는 다른 주제로 A와 B가 다시 맞붙었다. 다만 이 주제에 대해서에 내 생각이 달랐다. 가만히 듣다 보니 이번에는 B의 논리가 더 타당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의견을 냈고, 이번에는 B의 편을 들었다.
A와 한참 논쟁하던 B가, 자신에게 지원 사격을 하는 낸 나에게 물었다.
"르혼 님은 누구 편이세요?"
그때의 대화도 사람도 희미하지만, 이 질문만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B의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의심이었다. 자기 의견에 공감하는 사람을, 동지가 아니라 적으로 바라본 것이었다. 왜였을까.
답은 명확하다. B에게는 '가'라는 주제에서 내가 A의 편을 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그러니 '나'라는 주제에서 내가 B의 편을 든 것은, B에게는 편을 바꾼 배신으로 보였을 것이다. 사람의 감정은 미묘해서, 완전히 적으로 인식하는 상대보다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상대에게 더 위협을 느낀다. 결국 B가 알고 싶었던 건 내가 이번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내가 어느 진영에 속한 사람인지, 아니면 자신의 편의에 따라 수시로 진영을 바꾸는 ‘박쥐’인지 하는 것이었다. 그런 질문에 "저는 이번 주제에서는 당신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라는 답은 성립하지 않았다. 그건 B가 듣고 싶은 답이 아니었다.
나는 누구의 편도 든 적이 없었다. '가'에서는 A가 맞다고 생각했고, '나'에서는 B가 맞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단순한 사실은, 양쪽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에게는 내가 변절자처럼 보였을 것이고, B에게는 내가 미심쩍은 전향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결국 나는 두 사람 모두에게 온전히 신뢰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논리적인 토론’ 자체를 즐기던 내가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만인의 적’이라는 별명이 붙고 나서였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중립이란 적도 아군도 아닌 제3자가 아니라 명백한 ‘적’이었던 것이다.
사안 하나하나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사람은, 진영을 전제로 사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결국 누구에게도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어느 진영의 말에 동의하든, 그 동의는 늘 ‘이번에만 우리 편을 든 변덕일 뿐’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 연재는 그 질문, "님은 누구 편이세요?"에 대한 뒤늦은 답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어느 편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간이나 중도도 아니다. 중립과 중도는 다르다. 아니 다른 정도가 아니라 거의 반대편 끝단에 있다.
흔히 '중립'이라고 하면 양쪽 진영 사이의 어딘가, 적당히 가운데 어디쯤을 떠올린다. 이쪽 말도 일부 맞고 저쪽 말도 일부 맞다는 식으로 절충하는 태도. 그러나 이것은 중립이 아니다. 보통은 이것을 '중도'라고 부른다. 하지만 내가 그날 밤 했던 일은 절충이 아니었다. '가'에서는 A가 옳다고 생각했고, '나'에서는 B가 옳다고 생각했다. 어느 쪽도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개별 사안의 옭고 그름을 판단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이 연재에서 다루고자 하는 '중립'이다. 중립은 진영과 진영 사이의 가운데 지점이 아니라, 애초에 진영이라는 틀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다. 다시 말해 중립은 반진영주의다. 중립은 진영주의를 전면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으로부터 현실에 적용할 절충안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진영주의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안에서는 이쪽 진영이 완전히 맞을 수도 있고, 다른 사안에서는 저쪽 진영이 완전히 맞을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사안에서는 양쪽 모두가 틀릴 수도 있다. 각각은 그나마 일말의 장점을 안고 있는 사안이, 절충안이 되면 서로의 단점만 끌어모은 최악의 대처법이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중립과 중도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중립에게 중요한 건 사안이고, 진영은 그저 거기에 따라붙는 이름표일 뿐이다.
앞으로 이어질 글들에서는 이 구분을 좀 더 분명히 하고, 진영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며 왜 문제인지를 짚어본 다음, 왜 중립을 표방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대가로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차례로 다뤄보려 한다. 그날 밤 B의 질문에 대한 진짜 답은, 아마 이 연재가 끝날 때쯈 더 분명해질 것이다.
* 이 텍스트는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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